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문단 편집) == 33년 만의 진범 검거 == 2019년 9월 18일 진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확인되었다. 원래 9월 19일 오전 9시 30분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자체 브리핑에서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채널A]]가 방송상으로 특종 보도했고 이후 다른 언론사들도 일제히 보도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채널A가 [[엠바고]]를 어기고 하루 일찍 보도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KBS]] [[박대기]] 기자의 [[https://mobile.twitter.com/waitingpark/status/1174322279418748928|트윗]]에 따르면 보도에 [[엠바고]]는 없었다고 한다. 2019년 7월 15일 새로 개발된 잔사 DNA 증폭 및 복원 기술로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품에서 새로운 DNA를 뽑아내었고 그걸 토대로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 베이스와 대조하던 중 일치 판정이 떴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의 경우 범인이 죽거나 다른 범죄로 수감되면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는 가설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가설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살인범은 살인의 짜릿함에 중독되기 때문에 자신의 거동에 문제가 없거나 신상이 자유롭다면 그만둘 리가 없다는 논지다. 결국 감옥에서 자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범죄자)|정남규]]도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6)는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이듬해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심, 2심에서는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에서는 계획살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 이에 대해 상세히 알아봐야 한다고 판단하여 파기환송했다. [[https://news.v.daum.net/v/19950116154400912|기사]], [[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94%EB%8F%842662|판결문]]] 20년 이상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무기징역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219939|#]] 그간 경찰은 지난 2년간 들어온 수십 건의 첩보를 바탕으로 7월 이춘재를 특정하고 두 달간 진범인지의 여부를 조사해 왔다고 한다. SBS의 추가 취재에 의하면 경찰이 국과수에 의뢰한 9차(1990년)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으로 확인되자 경찰이 추가로 감정을 의뢰했고 5차(1987년), 7차(1988년)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도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경찰은 9월 19일에 2, 3, 4차 사건의 증거물도 국과수에 의뢰했다. [[파일:화성 연쇄살인 사건_범인 혈액형.jpg|width=100%]] 사건 담당 파견 형사였던 하승균[* 1946~2020. 영화 [[살인의 추억]] 박두만 형사의 실제 모티브가 된 형사로 유력 용의자 [[이춘재]] 수사팀에 합류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2020년 11월 12일 심장마비로 향년 75세로 사망.]•김복준 전 형사들의 [[용의자]] 확정 직전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pP-jHpOQeDc|2부]] [[https://youtu.be/r4S789FI0B4|3부]] [[https://youtu.be/Em64W8Jnj2s|4부]] [[https://youtu.be/t6VZOrL4vuQ|5부]] 이 국과수 분석에서 사용된 9차 사건에서 확보된 용의자의 DNA는 순수하게 한 사람의 DNA이며[*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242080|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9차 사건 피해자의 속옷에 묻은 용의자의 땀을 분석했다고 한다.] 분석 결과 해당 DNA의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와 강필원 과장이 경기남부지방청에 문의한 결과 용의자 이춘재 역시 O형이라는 답변이 왔다고 밝혔다. 이번에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DNA 정보를 통한 동일인물 판정 방법은 이론적으로 지구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신뢰도라고도 말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1091513|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제야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건 수형자 DNA 데이터베이스가 2010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이전에는 DNA 대조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표창원 의원에 따르면 2010년대 초 기술로도 DNA 검출이 불가능해 2010년대 말에 와서야 검출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http://naver.me/5HNyDZ49|#]] 국과수는 2019년 9월 19일 경찰로부터 4차 사건 증거물 20여 점을 넘겨받았는데 피해자의 옷가지와 손수건, 메모지 등이라고 한다. 증거물의 갯수가 많기 때문에 이전 증거물 조사에 걸린 1~2주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 결과가 도출되는 데는 수주가 걸릴 것이라고 한다. 경찰은 지난 7월부터 10차 사건 증거물부터 순차적으로 의뢰를 했는데 6차 사건 증거물은 의뢰하지 않아서 6차 사건 증거물이 훼손되거나 소실된 게 아닌가라는 추측도 나왔다. 경찰은 일단 수사 중인 사항이기 때문에 나중에 밝히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82640|#]] 2019년 10월 1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 사건 수사본부는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4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이 씨의 DNA가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1115827&isYeonhapFlash=Y&rc=N|#]]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이 이춘재가 자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춘재는 사건 당시 23세~28세였으며 사건 당시 화성군에서 살았다. 심지어 '''잡을 기회가 3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찰 조사에서 모두 풀려났다고 한다. 1986년 8월 발생한 초등생 강간사건과 1988년 9월 8차 사건, 1989년 7월 발생한 초등생 실종사건 등 3건의 사건과 관련해 용의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6차 사건 이후에 발생한 1986년 강간사건 당시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1988년 8차 사건 때는 경찰이 이춘재의 음모를 수거해 국과수에 감정 의뢰까지 했지만 ‘현장음모와 혈액형[* 경찰이 본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는데 처제 강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및 형태적 소견이 상이하다’는 결과를 통보받고 또다시 수사를 접었다. 1989년 초등생 실종사건과 관련해서도 6차 사건에서 확인된 용의자 족장(255㎜)과 이춘재의 족장(265㎜)이 불일치하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Z55Q8BRXV|#]]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220453|#]] 이후 경찰은 당시 가장 핵심 목격자 2명을 대상으로 최면 조사를 실시했는데 둘 다 '''[[이춘재]]의 사진을 보고 범인으로 지목했다'''. 한 명은 7차 사건 당시 버스에 탄 용의자를 보고 버스 기사와 함께 몽타주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버스 안내양]] 엄 씨[* 그녀와 함께 목격자였던 버스기사는 2012년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9차 사건의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 한 양복입은 남성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격했던 41살 전 씨다. [[https://news.v.daum.net/v/20190928212222687|#]] 다른 목격자들도 나왔는데 9월 27일에는 3차 사건 당시 범인과 마주친 것 같다는 목격자가 나왔다. 당시 화성에 살고 있던 제보자는 한밤 중에 공용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어떤 남성이 따라들어왔고 제보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도망갔다고 한다. 제보자는 자신이 당시 장발에 여성 스웨터를 입고 있어 여성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하며 그 사람의 얼굴이 이춘재와 비슷해 보였다고 이야기했다. [[JTBC 뉴스룸]]의 2019년 9월 30일 보도에 의하면 1984년 여름무렵에 수원 세류동에서 당시 9살 초등학생이었던 A씨가 이춘재를 닮은 남자에게서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당시 A씨는 집 앞 골목에서 놀고 있었는데 칼을 든 남성이 갑자기 달려들었고 어른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하니 풀어 줬다는 것이다. 이후 A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몽타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자신을 위협한 남성이 몽타주와 닮았다는 것. 당시 A씨의 기억 속 남자와 몽타주 속 남성의 유일한 차이점은 '''짧은 머리'''였다고 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220803|#]] 물론 30년도 전의 일이라 기억의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이 증언을 가볍게 무시하기 힘든 것이 바로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다. 여고생이 살해된 화서역 인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던 여고생이 잔혹하게 살해된 오목천동,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세류동은 모두 수원역을 중심으로 한 반경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